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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기억에 남기기

이희완 강사님의 글, 감사합니다.

수업을 많이 줄이고 나니 몸이 편합니다.

 

이제 주 4일 학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3일은 탱자탱자 놀아버리죠 ㅎㅎ

 

여유로 남은 시간에 책을 읽거나, 책을 쓰거나, 영화를 보거나, 사람을 만납니다.

 

방학을 마무리하고 3월이 오니 편해진 몸 만큼이나 기분도 밝아지는군요.

 

 

강사 생활을 꽤 오래 했습니다.

 

초보로 시작해, 이래 저래 겪으며, 깨지며, 배우며, 긴 시간을 흘려 보냈네요.

 

성격으로 인한 긍정이겠지만,

 

돈을 벌지 못할 때도, 몸이 힘들 때도, 기분이 언짢을 때도,

 

그게 내가 강사라고 그렇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이건 매우 개인적인 특징이겠죠)

 

경험 속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거워했고,

 

교류를 통해 베인 상처들 역시 아픔을 통해 더 배우자 스스로 다독였네요.

 

 

강사 8년차일 때, 월급이 거의 10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수요가 많아졌고, 제가 가르치는 과목의 다양성과 더불어 희소성으로 수요가 참 많았더랬죠.

 

저는 수능 외국어 영역도 물론 하지만, 주로 비교과로 성장했습니다.

 

CBT, IBT, TEPS, 영어 논술, 영어 면접 등, 모의 국회, MUN, NSDC 영어 토론 등 -

 

수시로 대학 갈 아이들의 스펙 쌓기에 한 틀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거에요.

 

대체로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은 최상위권 아이들 100여명 -

 

 

요즘은 학강모에 글을 잘 적지 않는 편인데,

 

(실은 학강모에 처음 들어와 글을 읽기 시작한 것도 아직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전 되도록이면 이 길에 들어선 (넓은 의미로의) 동료들에게 긍정적이고 희망에 찬 말들을 주고 싶었습니다.

 

기왕 프로페셔널로 커리어를 진행 중이면, 정말 프로다운, 멋지고 예쁜 개개인들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직업군의 하나로 스스로를 분류하지 말고, '이런 커리어를 영위하는 자긍심을 지닌 나' 이면 참 좋겠어요.

 

 

강사이기에 강사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만,

 

항상 제 말과 글의 시작점은 '나' 입니다. 강사로서의 내가 아닌 '이름'으로의 나, 혹은 나라는 사람 그 자체의 빛남.

 

 

돈을 아주 많이 벌었습니다.

 

강사 8년차일 때, 그 전 해 입시에서 아주 많은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에 진학을 했고,

 

그 성과 아닌 성과가 제가 일하는 지역 원장들에게 퍼져,

 

수요만큼, 그리고 일하는 만큼 비례해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대체로 소박한 편입니다.

 

먹는 걸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해서 그 둘은 아주 즐겁게 할 수 있길 바랍니다만,

 

일상의 제 하루는 그냥 그냥.

 

욕심도 적은 편이라 현재의 소유에 그저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그런데 그 해, 많게는 한 달에 5,000만원을 벌었습니다.

 

돈이란 있으면 너무나도 편리하고 유용하면서도 참 무서운 재화입니다.

 

그 해, 갑자기 돈이 많아져서, 좋은 아파트를 한 채 사고, 외제차를 수시로 바꾸면서도 여전히 돈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늘어난 액수의 돈의 가치를 '나'라는 사람의 가치와 치환시키면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전 참 외롭고 불행해졌어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기도 했지만,

 

결국 분명 다른 동료들이나 친구들에 비해 우월감을 갖게 되었어요.

 

사실 그들과 전 모두 그대로 변치 않은 사람들일 뿐인데,

 

주머니에 돈을 많이 가져서, 그들이 소유하지 않은 더 비싼 물건들을 지녀서

 

내가 더 가치가 높다고 착각을 했던 겁니다.

 

예의를 갖추었지만 그래도 재수 없었겠죠. 그들과 함께였지만 그래서 외로웠겠죠.

 

 

제 삶의 전환점이 된 것은,

 

그렇게 질리도록 큰 돈을 벌던 18개월여가 지난 후입니다.

 

동생이 소개를 해 준 한 친구와 소개팅같은 선을 보고,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 했던 그녀와 결혼을 준비했습니다.

 

상견례를 하고, 예식장을 잡고 (예식장도 겉치례에 홀려 가장 비싼 곳 중 하나로 잡고)

 

그런 그런 날들을 보내다 -

 

 

밤에 자는데 다리에 쥐가 자꾸 나고,

 

몸이 너무 쉬이 지치고 힘이 들어 병원을 찾았는데,

 

몸의 장기 중 하나가 거의 다 망가졌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식을 하거나, 정기적으로 병원 다니며 치료를 하거나.

 

 

이식하기가 무서워 당분간 치료 받으며 준비하려고 수술을 했습니다.

 

남들은 두어 주면 퇴원하던데,

 

한 달이 넘게 집엘 못 갔어요.

 

열이 내리질 않아서.

 

 

조직 검사를 한다고 몸의 임파선 쪽 조직을 떼기 위해 드릴로 목을 뚫었습니다.

 

조직 샘플이 강남 세브란스에서 신촌 세브란스로 왔다 갔다,

 

그리고 며칠 후

 

의사 선생님이 혈액암이라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말기암, 임파절, 골수, 장기까지 모두 침범했다는 말에 피식 웃었네요.

 

 

파혼되었습니다.

 

원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아무런 부정적인 감정도 생기질 않았는데,

 

막연히 이별이란 먹먹함과, 그리고 미안함이 그 당시 제 감정의 전부였구요,

 

사실 어찌 이별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을 만큼

 

결혼까지 확정되었지만,

 

인연을 맺고 지낸 날들이 그래 봐야 5개월여라서,

 

흐릿 흐릿 그렇게 보낸 날들.

 

 

첫 항암제를 맞던 날,

 

전 계속 수업하러 나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열이 너무 올라 강의실에서 무너진 후,

 

4개월 동안 병원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근육이 다 빠져 걷지 못하고,

 

통증때문에 모르핀 주사를 달고,

 

먹지 못해 각종 링거를 달고,

 

대략 팔에 바늘을 5~6개 꽂고 지냈습니다.

 

 

삼주에 한번은 의사 선생님이

 

부모님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고,

 

그 말에 가슴이 너무 아프셨던 어머니께선 망연자실 하셨고,

 

그런 날 밤 아버지께선 제가 잠드는걸 무서워하셨습니다.

 

밤이 새도록 발을 주물러주시던 밤들이 아직 생생하네요.

 

 

어떤 분은 무얼 하러 이런 굳이 밝힐 필요 없는 말들을 하나 싶으실텐데,

 

제가 병원에 있던 2년여,

 

아파서 슬프고 절망하고 힘들었던게 아니라,

 

마음이 편안하고, 그때까지의 내 삶과, 혹시 앞으로 남아 있을 생명의 불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찾아와준 동료들, 친구들, 후배들, 은사님들,

 

아침과 밤 또 새벽에서 아침으로 내내 함께 옆에서 간호해 주시던 부모님과 동생

 

사람이 이렇게 소중한건데, 시간이 이렇게 아쉬운건데, 아끼고 껴안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인데.

 

 

어머님과 손 잡고 산책을 하던 날 기뻤습니다.

 

동생과 늦은 밤 병원에서 탈출해 보고싶던 영화를 볼 때 즐거웠습니다.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Taken 이란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갔을 때도 행복했구요,

 

중간 중간 찾아와준 친구들의 차로 우리 식구 모두가 함께 외식을 할 수 있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동생과 동료들과 전라도를 도는 여행도,

 

어머니와 함께 찾은 아침고요 수목원도,

 

그 2년이 지나던 시간 동안의 경험들은 아픈만큼 소중합니다.

 

 

2010년 다시 조금씩 일을 시작했고,

 

잊혀진 강사이기에 천천히 맡은 아이들과 열심히 공부했던 1년이 지나고,

 

2011년 지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학원장님께서 불러주셔서

 

또 일을 시작했습니다.

 

 

첫 달 월급은 36만원,

 

두 달 세 달 네 달 모두 50~200만원여 조금씩 오르다,

 

그 해 여름부터 다시 생활에 여유를 찾을 만큼 경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벌던 때와 비교도 되질 않지만,

 

지금의 전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고,

 

하고 싶은 말들을 하고,

 

표현하고 싶은 감정들을 숨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하며

 

나의 날들을 보냅니다.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삶이란 주어진 그 시간을 채워 가는 '나'로 형상화 되는 것 같습니다.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이희완의 2년도 '이희완으로' 제법 소중하게 형상화가 되었습니다.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고,

 

나의 주변 분들도 하나뿐인 그이들이라 아끼게 되고,

 

그런 날들이 채워지는 과정이 참 즐겁고 행복한 거라 여깁니다.

 

 

성공을 행복과 치환할 수 없다 생각해 제목을 달아보았습니다.

 

아니면, 행복해야 성공하는 거지 라는 생각도 스칩니다.

 

항상 '지금의 나'를 아끼세요.

 

건강을 챙기고, 슬프거나 화가 나면 흐르는대로 슬퍼하고 화를 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며 니가 참 좋다고 표현하고,


얄미운 누군가에겐 넌 참 얄밉다고 얘기해주고, 있어서 즐거운 자리는 충분히 즐기고,


불편한 자리라면 있는 마음 그대로 양해를 구하고 피하는


그런 식으로 나를 아껴주는 마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그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도에서 나의 마음을 투명하게 열어서 보여주는 날들이,


저의 경우엔,


오히려 남들을 신경 쓸 때 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편안하고 좋아졌고, 나도 더 즐겁게 하루가 채워져요.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사실 crux는 아주 단순합니다.

 

행복하자는 거에요. ^^

 

'하나 밖에 없는 나' 라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가장 뿌듯하게 채우자구요.

 

 

그래서 전

 

오늘도 하고 싶은 말, 표현, 일, 모두 하고

 

내 마음 내가 다독이며 보냅니다.

 

 

선생님들 모두,

 

역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더 챙기고 아껴주세요. 물론, 몸두요.

 

 

봄입니다, 봄.

 

화사함, 따뜻함, 그리고 봄바람이 주는 달콤함,

 

모두 만끽하는 새로운 봄 맞이하세요.